오늘은 수정궁, 크리스탈 팰리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1905년 영국 런던의 남부 지역을 연고로 창단한 축구 클럽입니다. 인근에 있었던 수정궁에서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고, 이 때문에 대한민국의 축구 팬들도 흔히 수정궁이라고 애칭 삼아 부릅니다.
창단 직후 같은 해 창단한 첼시와 지역에서 축구를 하던 사우스햄튼과 더불어 잉글랜드 축구협회(FA)에 가입 신청을 했으나 혼자만 거부당했다. 그래서 1차 대전 이후까지 지역 리그에 참가하다 이 리그가 FA의 3부 리그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승격에 성공, 이때부터 주로 FA의 하부리그에서 축구를 하다가 버트 헤드 감독 시대인 1969년에야 최상위 리그에서 뛸 수 있게 되었을 정도로 힘겨운 세월을 보냅니다.
이후에도 2~3부 리그를 전전하다 1976년에 팀의 선수였던 테리 베너블스가 은퇴하자마자 감독으로 승진하여 팀을 잘 추스리고 유망주들을 잘 키워내서 폭풍 승격을 이뤄내며 3부리그에 있던 팀을 3년만에 1부 리그까지 승격시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최상위 리그에서의 두번째 시즌에 영입한 선수들이 망하면서 크리스탈 팰리스는 하위권으로 처지게 되고, 10월 경에 QPR의 부름을 받아서 다시 2부리그 팀의 지휘봉을 잡게 됩니다. 그리고 베너블스가 통수치고떠난 후 크리스탈 팰리스는 8년동안 1부리그로 올라오지 못하다가, 1984년에 취임한 스티브 코펠 감독의 지휘 아래 이안 라이트의 활약에 힘입어 1989년 1부 리그로 돌아옵니다. 89-90 시즌 리그에서는 당대 최고의 팀이었던 리버풀에게 9-0으로 두드려맞는 등 고전 끝에 15위에 그쳤지만, FA컵에서는 역사에 기록될만한 난타전 끝에 그 리버풀을 4-3으로 제압하고 결승에 오릅니다. 이때 결승골을 집어넣은 사람이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을 역임하고 2015년 팰리스의 감독으로 돌아온 앨런 파듀. 웸블리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난 팰리스는 연장 끝에 맨유를 3-3으로 물고늘어져 결승전 재경기까지 이끌어냈으나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팀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팰리스는 이어지는 90-91 시즌 역사상 최고 성적인 1부 리그 3위를 기록하고 풀 멤버스 컵 우승까지 거두고, 이때가 팰리스의 가장 빛났던 영광의 순간 입니다.
그러나 프리미어 리그의 창설 이후 팰리스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프리미어 리그의 첫시즌인 1992-93 시즌 득실차에서 밀려 20위로 강등당하고, 이듬해 2부 리그를 우승하며 프리미어 리그로 돌아왔지만, 1994-95 시즌 리그의 팀이 22개에서 20팀으로 줄어들면서 4팀이 강등당하게 되는 바람에 팰리스는 22개 팀 중 19위를 기록하고도 또다시 FA에 의해서 강등의 아픔을 당하고 맙니다. FA를 죽입시다 FA는 나의 원수 이후 절치부심해서 1996/97 시즌에 승격전도사 데이브 바셋 감독의 지도 하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지만 다음 시즌에 결국 강등당했습니다.
1998년 강등 이후 수년 동안 2부 리그에서 법정관리를 당하는 등 안습의 세월을 보낸 팰리스는 2003-04 시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스트라이커 앤디 존슨의 맹활약을 앞세워 2004년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했지만, 존슨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21골을 퍼부었음에도 이듬해의 강등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2004-05 시즌은 37라운드까지도 강등 확정 팀이 없었을 정도로 치열한 강등권 싸움이 벌어졌었기에 더더욱 안습이었습니다. 이후 풋볼 리그 챔피언쉽에서 재정난으로 인한 승점 삭감에 또다시 법정관리 등의 험한 꼴을 겪어 오던 팰리스는 2012-13시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신성 윙포워드 윌프리드 자하의 맹활약을 앞세워 2013년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했지만, 그 자하조차 맨유로 떠난 채 맞이한 9년만의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시즌은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고, 그 후 다시 맨유에서 자하를 영입 후 현재는 1부 팀에 정착한 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