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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이야기/축구 클럽 소개

발렌시아 CF

구단 소개

발렌시아 C.F는 1942년에 코파 델 레이에서 클럽 역사상 첫 우승을 했고, 1940년대 중반에 두 번의 리그 우승을 추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50년대에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신계 등극에 좀체 기세를 펴지 못하다가 1960~70년대에 마리오 캠페스 등의 활약으로 유럽무대에서 성공을 거듭하며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특히 1970년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이끈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감독으로 부임해 1970-1971 시즌 리그우승과 코파 델 레이 3연속 결승진출등을 해냈지만 정작 코파 델 레이에서는 3연속 준우승을 차지하며 1974년 디 스테파노 감독은 물러나야 했고 그를 따르던 여러 선수들이 떠나면서 발렌시아는 부진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후 발렌시아는 디 스테파노 감독의 지도력 부재를 통감해 1979년과 1986년에 그를 다시 데려와 감독으로 선임했으나 결국 1980년대 중반 재정난으로 인해 1985/86 시즌에 세군다 리가로 강등되는 아픔을 맛봐야 했지만, 한 시즌 만에 바로 프리메라 리가로 복귀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990년대에 다시 팀을 정비하기 시작한 발렌시아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시절에 안정적인 전력의 토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후임자인 엑토르 쿠페르 라파엘 베니테스가 감독으로 활약하던 2000년대 중반 두 번의 리그 우승, 챔피언스 리그 2연속 준우승, UEFA컵 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며 구단의 최전성기를 일구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엑토르 쿠페르 감독 시절이었던 99-00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깜짝 준우승을 차지하며 본격적인 황금기가 시작되는데, 골키퍼 산티아고 카니자레스를 위시한 안정된 수비 라인을 바탕으로 당시 떠오르는 플레이메이커였던 가이즈카 멘디에타, 당대 최정상급 윙어였던 클라우디오 로페즈, 킬리 곤살레스를 활용한 효율적인 역습 축구로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라치오,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격침시키는 파란을 일으키며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석패했습니다.

00-01 시즌 전, 클라우디오 로페즈 라치오로 보내고, 전년도 파란의 주역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신예 헤라르드 로페스, 하비에르 파리노스를 각각 바르셀로나 인테르로 이적시키며 전력 누수가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당대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인 로베르토 아얄라와 전세계가 주목하던 유망주 파블로 아이마르, 그리고 충격적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강등으로 이적을 감행한 견실한 미드필더 루벤 바라하를 데려오는 동시에 유스에서 올라온 비센테 로드리게스, 다비드 알벨다가 성공적으로 A팀에 적응하며 더욱 두터운 스쿼드를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반적인 역습 중심의 전술 기조는 유지한 채, 더욱 강해진 수비, 미드필드진을 바탕으로 00-01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록 바이에른 뮌헨에게 승부차기 끝에 아깝게 패배했으나 2년 연속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일구어냈습니다. 단, 리그에서는 리그 최종전 직전까지 4위를 유지하며 차기년도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눈앞에 두었으나, 리그 최종 라운드 바르셀로나 전 인저리 타임에서 인구에 회자되는 히바우두의 오버헤드킥 역전골을 얻어 맞으며 5위로 시즌을 종료하고 말았습니다.

01-02 시즌 전에는 에이스 가이즈카 멘디에타 라치오로 이적했고, 팀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엑토르 쿠페르 감독이 결국 인테르로 떠나며 우려 속에서 시즌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임 감독으로 임명된 라파엘 베니테스가 효과적인 4-2-3-1 시스템을 안착시키고, 바라하-알벨다 더블 볼란치 라인이 유럽 최고 수준의 허리 라인으로 거듭나면서 전력이 안정되었다. 그 결과는 01-02 시즌 라 리가 우승하였고, 02-03 시즌 5위로 부진을 겪었으나, 03-04 시즌에는 다시금 라 리가 우승을 차지하는 동시에 UEFA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더블을 달성했습니다. 강력한 수비와 더블 볼란치, 그리고 두 윙을 활용한 측면 공략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의 창의성의 활용 등 4-2-3-1 전술의 정수를 보여준 시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즌 후,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리버풀로 자리를 옮긴 이후, 발렌시아는 5년간 유지했던 유럽 최정상권 클럽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리그에서도 잘해야 3, 4위를 그치면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구단 최고의 황금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런 황금기를 거치며 발렌시아CF는 매년 50,000장의 시즌 티켓이 팔리고 있으며, 대기 명단은 20,000명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발렌시아는 75,000석의 새로운 경기장(누에보 메스타야, Nuevo Mestalla)을 건설을 발표했습니다.

04-05 시즌에는 황금기의 밑바탕을 만들어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를 감독으로 선임하며, 초반 선전 했으나, 새로이 영입한 베르나르도 코라디, 스테파노 피오레, 마르코 디바이오, 에밀리아노 모레티 등 이탈리아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거 영입 했으나, 이미 완성도가 높은 스쿼드에 균열을 가하는 역효과만 초래하고 말았고, 전년도 기념비적인 더블에 혁혁한 공을 세운 파블로 아이마르가 외면받으며 스쿼드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말았다. 결과는 아예 유럽 대항전 출전권 조차 놓치는 대실패 했습니다.

05-06 시즌에는 키케 플로레스가 감독으로 선임되어 이탈리안 커넥션으로 초토화 된 발렌시아를 일부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대 초반 정도의 위력은 아니더라도 두 시즌 동안 각각 3위, 4위를 기록하며 반등의 발판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무렵 스쿼드의 개편도 단행되었는데, 라니에리 감독에게 외면받으며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던 파블로 아이마르를 이적시키는 한편, 유스 팀 출신의 다비드 실바에게 아이마르와 같은 백넘버 21번을 넘겨주며 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국가대표 호아킨 산체스를 베티스로부터 2,500만 유로에 영입하며 좌 비센테 - 우 호아킨 이라는 무시무시한 윙어진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B팀의 유망주 레프트윙인 후안 마타도 합류시키며 두터운 스쿼드를 만들어냈습니다. 스트라이커 보강도 눈에 띄는데, 사라고사로부터 촉망받던 공격수인 다비드 비야를 영입했고, 리버풀에서 고생하던 페르난도 모리엔테스마저 합류시켰습니다. 허리의 루벤 바라하, 다비드 알벨다는 2000년대 초반의 포스까지는 아니더라도 건재했던 상황이고, 수비에서도 유망주였던 카를로스 마르체나가 각성하며 로베르토 아얄라와 두터운 수비를 재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07-08 시즌은 아약스, 벤피카, 아인트호벤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두며 명장으로 떠오르던 로날드 쿠만을 감독으로 선임했는데, 잠시 주춤하던 발렌시아를 다시금 유럽 대항전을 호령하는 강호로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는 실패했습니다. 취임 후, 쿠만은 오랫동안 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던 산티아고 카니자레스, 다비드 알벨다, 미겔 앙헬 앙굴로를 그야말로 내치며 고참 선수들과의 힘싸움을 시작했고, 팀 캐미스트리는 그야말로 아작나버렸습니다. 충격받은 카니자레스는 바로 은퇴를 선언하고, 주장 알벨다는 눈물의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팀은 친 쿠만파와 반 쿠만파로 나뉘면서 팀웍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쿠만은 선수들을 공공연히 혹평하고, 좌우윙의 위치를 별 이유 없이 바꾼다던지, 공격수에게 풀백을 보라고 한더던지 전술적인 기행도 서슴지않았습니다. 3년전 라니에리의 실패는 신규 영입된 선수들이 하나같이 적응을 못하면서 스쿼드 구성에 문제가 생긴 것에서 비롯되었으나, 이건 팀웍 자체가 완전히 붕괴하고, 팀의 핵심 인력을 내쳐버린 것이라 더욱 심각했으나 새로운 얼굴들로 다시금 기지개를 펴려던 발렌시아는 그렇게 07-08 시즌 망해버렸습니다.

08-09 시즌에는 새로이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선임되어 쑥대밭이 된 발렌시아를 어느 정도 재건하는 데에는 성공합니다. 08-09 시즌 6위를 시작으로 09-10시즌부터 세 시즌간 리그 3위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3위라고 하더라도 펩 과르디올라 시대의 바르셀로나와 갈락티코 2기의 출범과 함께 주제 무리뉴가 취임한 레알 마드리드와 승점 30점 정도의 현격한 격차로 3위를 기록하며, 2000년대 초반의 영광과는 분명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무렵 구단의 채무 문제까지 터지며 주축 선수였던 다비드 비야, 다비드 실바, 후안 마타, 카를로스 마르체나, 비센테, 호아킨을 매각할 수 밖에 없었으며, 구단의 미래로 점찍었던 이스코 말라가로 이적하고 말았습니다. 선수 수급의 어려움과 함께 더욱 더 두 거인 클럽과의 격차는 커져갔고, 에메리 감독도 11-12 시즌 후반, “지금이 우리 팀의 한계다”라며 자조섞인 인터뷰를 하는 등 한계를 절절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라이벌로는 같은 도시에 연고를 두고 있는 레반테 UD와, 같은 주에 위치한 비야레알 CF, 에르쿨레스 CF 등을 꼽을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지역더비에 불가하고, 전적으로 발렌시아가 가장 싫어하고 라이벌로 느끼는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입니다. 현지 팬포럼이나 관련사이트들만 가더라도 레알 마드리드를 조롱하는 글이나 그림, 사진 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18-19 시즌 챔스 1차전 유베와의 홈경기에서 9시즌 동안 레알의 에이스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퇴장당하자 발렌시아 팬들은 매우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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